스타베팅 당을 사랑했다

때는 야심한 밤이었다.

밤이라고 해서 어둡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의 밤거리는 하루 중 가장 밝은 시간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여느 때와 같이 네온 사인이 길거리를 밝히고, 사람들은 약과 술에 취해 하루종일 자신들이 일했던 기억과 피로를 씻어낸다. 내일도 똑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

또 그 중 몇몇은 ‘교배소’로 향한다. 섹스만큼 기분이 좋으면서도 직관적이며 효율적인―노동자를 만들어내는―행위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 거리의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이 남자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됐다.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어떻게 성과 약 ‘따위’에 일을 그르치겠는가.

“올리 동지. 날세, 하비. 정말로, 정말로 문제 없는거 맞는 거겠지?”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 했다. 다급하다는 듯, 목소리에는 불안이 서려있고 시선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그가 상당히 정신적으로 몰려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렇다니까 하비 동지. 지금 자네 아내나 딸, 둘 다 잘 있어. 걱정하지 말게.

딸과 아내라는 관계성은, 그들이 반(反)체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뜻 했다. 아내, 부인, 딸, 어머니라는 관계성만큼 불결하고 끔찍한 것은 없었다.

아, 하지만 아버지라는 단어는 예외다. ‘아버지’는 단 한 분 계셨으니까.

그러나 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단어들을 내뱉는 하비 일행은, 최소한 ‘정상적’인 가치관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야. 아까 보내준 파일은 확인했나?”

―그래. 정말 대단해. 우리 모두가 놀랐어. 알베르토 당위원장의 자택 구조라니! 이만한 대어를 잡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그래, 혁명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내 곧 돌아감세. ‘집’에서 보자고.”

그는 통화를 끝마쳤는지, 손목의 홀로그램 장치의 전원을 꺼트렸다. 혹시 모를 도청과, 감청, 그리고 추적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는 잠시 손목의 장치를 바라보고는, 결심했다는 듯이 주변에 펼쳐두었던 자신의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눈에 보였다. 필요 없는, 혹은 들켜서는 안 되는 물건들을 챙기는 그.

하지만 인생사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그걸 하비라 칭해진 자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있던 곳에서, 희미하게 불빛을 내던 전등들이 일제히 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관쪽 불이, 두번째는 부엌이, 그리고 마지막엔 방과 거실 불이.

“누, 누구요!”

그는 아까 전 당위원장의 집 안을 들 쑤실때보다도 더욱 소름이 끼쳤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답게 풀어져있던 정보가 많았던 당위원장의 저택. 그래서 어찌저찌 계획대로 흘러간 작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획과는 아무 상관 없이 생긴 변수.

이 순간까지도 아무런 소리도, 미동도 없는 주위 상황이 너무나 낯설었다.

“어, 어서 나오시오! 내가 겁 먹을 것 같소?!”

그는 겁에 잔뜩 질려하면서도 어느새 꽉 쥔 권총을 앞을 조준한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며 흐르고, 심장의 고동이 어느때보다도 급박했다.

―철컥.

지금껏 자신이 움직이며 생긴 소음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귀 바로 옆에서 들린 소리에 모든 동작이 멈춘다.

“총 내려놓으시오, 하비 동지.”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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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비 해리엇

[나이] 34세

[주소] 할로우 시티 122-67번지

[등급] 블랙카퍼

[신장/체중] 분석중···

[직업] 섬유질 생산 공장 1번 라인 관리자.

···(중략)···

[기타 기입 사항] 반체제 성향의 발언 다수. 직장에서의 결석 다수. 신고 다발 인물. 주의 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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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의 인물 정보였다.

역시 인공 안구가 성능은 확실하다. 이렇게 어두운데도 잘 보이고, 주변 사물과 인물에 대한 분석마저도 정확했다.

“총 내려놓으시오. 하비 동지.”

나는 권총을 그의 뒤통수에 가져다댔다. 지금 내려놓으면 쌍방이 편해지는 길이다. 제발 내려놓자.

하지만, 그는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몸은 떨고 있었으나, 손아귀의 힘줄에 가해지는 힘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슬프구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죽여서는 안됐다. 아직 아무런 말도 안했는데, 벌써 처리하면 쓰나.

그는 몸을 순간적으로 웅크리고는 내 팔을 자신의 팔꿈치로 쳐서 권총을 떨어트리게 만들려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당해서는 수사관이 될 수 없다. 나는 타이밍을 맞춰서 권총을 든 손을 그대로 그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큭···!”

하지만 그는 그걸로 끝날만큼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당연히 반대편 손에 들려있는 권총으로 나를 노려왔다.

허나 어쩌면 좋을까.

“크아아악!”

그의 팔이 서걱, 소리를 내며 썰리고 말았으니.

“딘 레이스 특등 수사관님,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어째서 시간을 낭비하십니까?”

하필이면 이 녀석과의 첫 근무 날에 배정된 죄겠지. 이 녀석은 안드로이드라 가차 없거든. 어우, 보고 있는 나까지 아파온다. 예쁘게도 썰어놨네.

“비인도주의적이지 않나. 이 자에게 만약 죄가 없다면 어쩌려고 이런거지?”

그녀는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물론, 실제로 그에게 죄가 없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긴 하지.

내 인공 안구가 보여주는 분석과, 내 뇌로 생각해낸 결과도 그가 반체제 사상을 가진 단체와 접촉하고, 그들의 지시를 따르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모든 주위 정황과 물증들, 그리고 딘 레이스 특등 수사관님께 보인 적의만 보더라도 확실합니다. 지금 당장 ‘처리’하시지요.”

하지만 그녀는 너무 극단적이다. 이래서야 못 쓰지. 수사란건 이성적이기만 해서 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로봇 친구.

“아이고, 어째서 의원님들께서 자네를 내게 붙였는지 알 것 같군.”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로봇들이 그렇지 뭐. 지나치게 이성적인 탓에 감정까지는 계산에 못 넣어요. 이에 대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겠어.

“잠깐 지켜보고 있게.”

나는 흐느끼며 자신의 팔을 감싸안은채 바닥을 뒹굴고 있던 하비 씨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더욱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했다.

“으아아··· 아아악!”

나는 절단면이 드러나는 그의 팔을 억지로 들어서 급속 냉각 스프레이를 통해 절단부위를 지혈시켰다. 그리고 이 스프레이에는 진통 작용도 있으니 고통도 조금 가실 것이다.

“어떠시오. 좀 괜찮아지셨소, 동지?”

그는 흐느끼면서도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였다. 음, 잘 풀릴 수도 있겠어. 오히려 저 로봇의 행동이 충격요법이 된 건가.

“내 질문 몇가지만 하겠어. 답할 수 있겠나?”

“예, 예! 뭐든 물어보시오!”

나는 품 속에서 손전등을 꺼내 그의 얼굴에 비췄다. 주변은 암흑이기에, 이곳에 있는 빛이라고는 손전등이 전부. 그의 겁에 질린 표정이 더욱 더 선명해졌다.

“으윽···!”

지금까지는 흑백으로 보였던 것들이, 컬러로 보이니까 조금 잔인하긴 하다. 며칠동안 고기는 못 먹겠어.

“당신의 배후가 누구요?”

나는 평소처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그, 그건···! 안 되오! 차라리 죽여···!”

하지만 누구나 그랬듯이 말해줄 수가 없겠지. 역시 쉽게 가는 법이 없었다.

“그래, 내 그럴 줄 알고 있었소. 그러면 질문을 바꾸겠소.”

그리고 나는 이런 이들의 정답을 알고 있다.

“당신은 당을, 이 나라를 사랑하시오?”

이 질문을 받은 이들의 반응은 두가지다. 답하지 않거나, 화를 내거나.

“그, 그게 무슨···”

그리고 그는 전자인 듯 하고.

“말 그대로요. 당을 사랑하시오?”

“······”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오히려 뚫어져라 내 눈을 쳐다볼 뿐.

“하하, 그럴 줄 알았소. 사랑하는군.”

그러나 내 대답은 어느 누구던 똑같았다.

여기서부터는 대부분 똑같은 레파토리다.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거요?”

의문. 의심. 두려움.

인공 안구의 분석 없이도, 눈에 보이는 그의 감정들.

“흠, 잠시 이걸 볼까.”

나는 품 속에서 소형 홀로그램 영상 수신기를 꺼내 그에게 내보였다.

그의 눈 앞에 떨구자, 빛을 뿜으며 어떤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당신! 어서, 어서 도망쳐요!

그 속에는 울부짖는 어린 여자 아이가 이상한 봉투를 쓴채 묶인 상태로 소리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연인 혹은 아내로 보이는 자가 있었고.

아 물론 ‘아내’와 '연인'라는 단어는 여기서는 꺼내서는 안 되지만.

“으, 불결해라. ‘아빠’라니. 저런 더러운 단어를 왜 가르친 거요, 하비 동지?”

나는 그들의 단어 선택을 비난했다. 가슴 한켠의 양심이 나를 찌르긴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세상이 그렇게 하라는데.

“내, 내가 속을 줄 아시오? 내 가족들은 우리 동지들에게 보호 받고 있소! 저건 가짜 영상일 뿐이오!”

“하하, 오랜만에 웃기는 일이군. 내가 당신들의 ‘집’조차 모를 줄 아시오?”

사실 내 표정근은 움직임이 없었다. 실제로 웃긴것도 아니고,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뿐.

“그, 그렇다면 대체 뭘 원하는 거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거요?!”

하지만 그는,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감정적’이었다. 열정이 느껴진다 해야하나. 분노겠지, 아마도.

“뭘 이렇게까지라니··· 하비 동지의 깊은 뜻을 파악하여 실행하는 중이오. 하비 동지는 우리의 국가가 노동자 부족에 빠지지 않게끔 인력 보충을 돕는거잖소?”

하지만 그의 분노는 증거일 뿐이었다. 협박이 통하고 있다는 증거.

나는 그의 가족을 강제 노역장으로 보내겠다는 협박을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 너 이 씨발···!”

“걱정하지 마시오, 그들은 이 나라에 이바지할 뿐이오. ‘성욕 처리 여성’이야, 다시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소?”

성욕 처리 여성. 연인을 뜻하는 단어. 진짜 이 세상은 미쳐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발상을 하는건지.

“아니, 제발··· 미안하오···! 잘못했소! 대체 내게 뭘 원하는 거요! 대체 뭘 하면 되겠소?!”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 디테일이 되는 법. 그는 이제 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었다.

“하하, 걱정하지 말라니까는. 잘 아시잖소. 우리 당은 노동자들을 ‘소중히’ 대하오. 귀중한 자원이자 뭐든 함께 이루어 나갈 ‘동지’를 어찌 함부로 대하겠소?”

나는 한번 더 그를 절벽 끝으로 내밀었다.

“제발··· 가족만이라도 살려주시오···! 강제 노동형은 제발···!”

아마 직감했을 것이다. 정말 이대로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이 쯤에서 동아줄 하나 정도는 내려줘야겠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강제라니··· 오해가 있나보오.”

“대체, 대체 원하는게 뭐요··· 내가 그들을 말해봤자, 어차피 다 누군지 알고 있잖소!”

그는 척 봐도 무너져내리고 있는게 보였다. 이를 로봇 친구는 유심히 관찰하고 있고.

그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지. 배후라 할 법한 ‘집’의 위치도 알면서, 대체 뭘 더 알려고 하는것인지.

“그저··· 나는 동지가 당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소.”

그래서 나는 알려주었다.